여기 마이크가 있습니다. 4부 청년 예배 때 예수찬미단이 사용하는 마이크네요! 아마 이 마이크가 없다면 싱어들과 저의 목소리는 300명이 넘는 청년들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것 같네요.
마이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소리를 크게 증폭 시켜주는 기능을 가지고서 우리의 예배를 도와주는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주 사용하다 여기저기 깨어지고 고장이 나서 더이상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훨씬 좋은 성능의 새 마이크가 생기게 되면 언제든지 대체될 것입니다. “기능”을 가져야만 의미있는 마이크가 제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죠.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잘못을 범했다면 성령님을 따라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그런 시험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실천하십시오.”
(갈 6:1-2 / 현대인의 번역)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면 우리를 이 마이크와는 다른 존재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 쓰다가도 쓸모 없어지면 버려지는 마이크와 같은 기능품이 아닌, 쓸모 없어 보이는 모습에도 다시 한 번 바로 잡아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존재들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어떠한 기능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이 있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살아있는 것 자체로 소중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창조하셨기 때문이죠.
당장이라도 제기능을 잃은 마이크는 교체 될 것이고, 지지직거리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인이어는 버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가사를 실수한 싱어와 멘트를 잊어버린 인도자, 코드를 잘못 짚은 악기팀과 찬양시간을 조금 넘겨 도착한 우리는 쉽게 버려지거나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이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지으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존재”로서 바라보고 있나요? 아니면 언제든 대체 가능한 “기능”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나요?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 더스토리 청년 공동체 되기를 기도합니다.